[스크랩] 아내의 발
[아내의 발]
사실 요즘 같으면 너무나 한가하여 뭘로 시간을 보내나 걱정을 할 때가 있습니다.
사무실은 실장과 과장과 기사가 할 일 정도로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
건설경기를 풀어준다 하는 데 건설경기를 아파트나 짖는 걸로 착각하는 현 정부의 우매함을 탓하는 것도 질렸습니다.
건설경기는 뒷골목 막걸리 집부터 시작되는 걸 모르는 참여정부의 무능함을 내걸었습니다.
요즘에 읽은 책은 많습니다
티브이를 끄고 아내는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스님들의 책을 읽고 나는 내가 준비한 베스트 셀러를 사다 쌓아놓고 하나하나씩 읽어갑니다.
기억력과 총명함이 쇠퇴해서인지 주인공들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언더라인을 치며 읽습니다.
다빈치 코드는 이미 읽었고, 디셉션 포인트나 인생수업, 모모, 호박방, 소서노 같은 소설들과 오만과 편견이란 책은 다음 차에 읽을 것입니다
일상은 정말 활기를 찾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나이든 늙은이를 찾는 일을 구하기는 더욱더 어려워 친구들은 한적한 뒷방에 모여 100원짜리 고스톱을 치며 짜장면 내기를 한다고 합니다.
좀 늦게 출근하고 좀 일찍 퇴근을 합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등 붉은 글씨가 있는 날은 아내랑 뒷산에 오릅니다.
작은 계곡도 있고 온갖 새들의 노래도 있습니다.
"저녘은 뭘 먹을까?"
아침에 출근하는 나에게 아내는 말합니다.
사무실에 앉아 아내에게 전화를 겁니다.
전화를 걸어야 할 말이 뭐 있겠습니까마는 손주와 통화한 이야기며 저녁에 뭘 먹고 싶다는 말을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예전같으면 어쩌니 저쩌니 사는 것에 대한 불만도 격려도 있지만 나이든 할아버지가 되고 할머니가 되니 만나는 사람도 적고 할 이야기마저도 작습니다.
"사랑해.."
농담처럼 아내에게 사랑한단 말을 하면 아내는 뜬금없는 소리에 잠시 놀라다가
"그래도 좋네요..." 라며 웃습니다.
예전엔 그리 말을 하지 않는다며 재촉했던 일도 있었지만 "사랑해" 란 말을 하기 어려운 세대에 태어난 사람이라 그 말을 많이 해주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당뇨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매일매일 처가의 올케와 서울서 이사온 언니를 대동하고 뒷산엘 갑니다.
그것은 일과중에 제일 소중한 일이라며 행여 서울에서 친척이나 동서들이 오면 다 제쳐놓고 같이 오르려 합니다.
산이 고마워진다며 당뇨가 잡혀가는 기미를 보이며 살아가는 것에 복잡함을 잊습니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마음 먹었으니 당신도 그리 알아요...내가 아프면 가족과 곁에 있는 사람이 다 고생" 이라며 뒷산이 의사 선생님 이라며 종교 의식처럼 산엘 오릅니다.
당뇨는 발끝의 미세 혈관이 터져 썩기 시작하면 어렵다는 것과 친정오빠가 그렇게 세상을 떠난 걸 잊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아내가 어찌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 조차 합니다.
퇴근 후에 저녁준비를 같이하고 마주 앉아 저녁을 먹습니다.
오늘 만난 사람들의 일과 자신에게로 온 전화의 내용과 들은 소문들을 이야기 하는 것을 들으며 나는 가끔 맞장구를 쳐줍니다.
매일 보는 연속극을 하나 보곤 뉴스 시간이 되면 반신욕을 하러 들어갑니다.
태양열을 설치해 전기를 들이지 않고도 매일 반신욕을 할 수 있음이 좋습니다.
나 역시 연속극이 시작되면 실내 자전거에 오릅니다.
지겹고 따분하지만 안장에 두터운 담요를 깔고 온몸에 땀이 흐를 정도의 힘겨운 시간을 보냅니다.
아령도 하고 역기도 열심히 듭니다.
이쁜 손주나 착한 아들과 딸에게 너무 일찍 기대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입니다.
거울 앞에 튀어나온 가슴을 혼자서 감상하며 뱃살만 좀 줄여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몸무게를 줄이기란 참 어렵습니다.
이제 하루의 맨 마지막 일과인 고운 아내의 발을 마사지 해주는 것입니다.
작고 하얀 발...
평생 부산한 내 삶을 보조 맞추며 사느라 고생한 발입니다.
"요런 발가락좀 보게..."
손주의 발가락 같은 작은 발가락이 올챙이 머리처럼 가지런하게 달려 있습니다.
언젠가 발가락이 저리다 해서 매일 자기 전에 발 마사지를 해준 게 오래전 일입니다.
약국에서 크림을 사다 비축해 놓았습니다.
작고 하얀 발로 이 세상을 딛고 사느라 힘든 발입니다.
나를 따라 한평생을 살면서 종종 걸음을 걸었고 아들을 업고 딸을 업어 키운 발입니다.
언제나 내 곁에서 내 삶에 누가 되지 않게 열심히 달려온 발입니다.
나는 그 발을 매일 만져줄 수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발가락을 간질이면 간지럽다 말하면서도 행복해 하는 아내는 정말 포동한 발을 갖고 있었습니다.
손도 얼굴도 모두 포동한 아내를 나는 지독히 흠뻑 사랑해준 적이 없는 듯합니다.
곁에만 있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으로 남편의 노릇을 다 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이제 텅 빈 큰 집엔 아내의 냄새만 있습니다.
아내의 잠자리를 봐주고 아내가 일어나면 침구를 정리해주며 오늘도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주길 기도합니다.
예전에 살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지만 세월을 어찌 할 수가 없는 듯합니다.
텅빈 집에 아내가 없다 생각해보면 소름끼치도록 무서울 것입니다
"90까지는 살아야지..?"
"그럼 나는 95살이게..?"
우리는 같은 날 같이 손잡고 이 세상을 떠나 파란 하늘 넘어 있는 우리의 미래의 세상에 가려고 매일아침 부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거기 가서도 아내의 이쁜 발은 내가 마사지 해주려 합니다.
며칠 너무나 보고 싶던 손주가 옵니다.
아내는 손주가 오면 준다며 마당에 살구와 자두를 따 잼을 만들고 반찬을 만들고 손주가 좋아한다 말한 것들을 다 기억해놓고는 하나하나 준비합니다.
바닷가에 가는 일도 노래방에 가는 일도 모두 하루하루 사는 일을 즐겁게 하는 일입니다.
일 년에 한두 번 뿐이 볼 수없는 손주가 오래 있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손주사랑에 모두를 건 듯 들떠있습니다.
"할부지.. 한국가면 포도를 많이 사주세요.. 많이요.."
"그래 많이많이 사 줄게..."
나는 가슴이 저려오는 걸 느낍니다.
"그깟 포도 몇 송이를...얼마나 먹는다구..."
생활비 아끼느라 손주에게 풍성한 과일을 사주지 못하는 아들의 삶을 이해합니다.
아내는 지금 종종걸음으로 주방을 오고갈 것입니다.
모처럼 점심을 집에서 먹기로 했습니다.
"여보...오늘은 잔치 국수로 점심할까..?"
그렇게 전화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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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창에 비친 달빛”이라는 필명을 쓰시는 분의 “아내의 발”이라는 글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http://cafe.chosun.com/club.menu.bbs.read.screen?p_club_id=moonriver&p_menu_id=2&message_id=348284)
님께서는 필자가 오래전에 저의 블로그에서 소개해드린 “지나간 것은 그리운 것인가?”라는 글(http://blog.joins.com/khs0255)을 쓰신 분으로 몇 해 전 회갑을 지내시고, 갑자기 찾아온 병마로 큰 수술을 잘 마치신 뒤 아내와 두 분이 경기도 인근의 농촌에 사시면서 풍부한 감성을 글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언제나 아내에게 “사랑한다”라는 말을 해보나?
나는 언제나 아내의 고 조그만 발을 씻어주면서 저런 감정을 느껴볼 수 있나?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잘 난 사내건 못난 사내건
부자인 남편이건 가난한 남편이건
큰 소리 치면서 사는 가장이건 부끄럽고 창피한 가장이건
이 세상 남자들은 모두 자그만 발을 지닌 아내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살아왔거나 앞으로 살아가겠지요....
나 없으면 부서지고 무너질 것 같은
연약해 보이기만 하는 저 여인네들의 조그만 발이
무너져가는 이 세상을 바쳐주고, 삶의 고뇌로 어깨가 쳐진 가장들의 마지막 힘이 되고
가이없은 사내들과 아이들의 마지막 쉬는 곳임을 누구든지 알면서도
저 여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사나이 발의 반도 안 될 것 같은 저 작은 발을 씻어주지 못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저 여인에게 “사랑한다”라는 말로 행복하게 해주고
언제가 되어야 저 여인의 콩만한 발을 씻어주면서 “자, 저쪽 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회갑을 넘기시고도 저런 용기를 가진 저 분이 참 부럽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쳐다본 창밖의 풍경
태풍이 막 지나간 9월의 푸른 하늘
갑자기 집에서 혼자 점심을 먹거나 아무 것도 먹지 않았을 아내가 생각납니다.
여보, 우리도 저녁에 잔치국수나 먹을까?
내 아내도 저 분의 아내처럼 행복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07. 9. 17. 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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